오래된 연장통의 도구 :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필요했던 것
'오래된 연장통'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사용했던 여러 도구가 그동안 어떻게 진화하였는가를 가볍게 살펴봄으로써 스스로를 이해하는 책입니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매우 쉽게 읽힙니다. 제대로 된 진화심리학 입문서를 기대한다면 저자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스티븐 핑거)', '도덕적 동물(로버트 라이트)',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앨런밀러&사토시 기나자와)'을 읽어 볼 것을 추천합니다. 책에 나오는 연장은 총 스물 한 가지 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원래 비어 있었습니다. 뇌를 연장통에 비유하자면 그냥 통만 있었던 셈입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아주 오랜 시간 살았던 우리 조상은 삶에 필요한 연장들을 하나씩 연장통에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선택으로 인간은 적응합니다. 진화심리학은 다윈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개체군 내에 가장 잘 전파되는 유전자가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지속적으로 선택되면서 복잡한 적응이 일어난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잡식형 인간입니다. 문자 그대로 '먹는 것을 구하는 것이 곧 삶'이었던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잡식형 인간으로 살아남으려면 예민함을 갖추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달콤한 것을 보면 입안에 군침이 돌고 자꾸 손이 가는 것은 달콤한 음식이 주는 높은 열량이 사바나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 본능대로 달콤한 음식만을 먹었다간 고지혈증, 당뇨, 비만과 같은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바나에서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책 제목대로 '오래된 연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은 침팬지 가계와 약 700만년 전에 갈라진 이후 95% 이상의 시간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며 보냈습니다. 농경 사회는 약 1만 1000년에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역사는 200년에 불과합니다. 700만 년이라는 인류 역사에서 농경 사회와 현대 사회를 합쳐도 사바나에서 보낸 기간에 비하면 너무나 빈약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오래된 연장(심리 구조)은 발 빠른 사회 변화 속도에 맞추어 새로운 연장을 준비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멘털을 부여잡지 않으면 불안정한 상태에 자주 놓입니다. 우리가 툭하면 불안하거나 스스로 통제가 잘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다그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시간에 오래된 연장을 하나씩 꺼내어 보며 새롭게 다듬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진화심리학이 재미있고 유용한 것은 이러한 본능을 인지함으로써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지금의 나'인지 아니면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고 있는 원시인의 행동'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 몇 분이면 됩니다. 잠시 눈을 감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본 다음 오래된 연장통에 들어 있는 연장을 조금 갈아 주면 됩니다. 모르면 불안하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생각보다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을 알면 좋은점
진화심리학으로 인간 본성을 알면 삶에 도움이 되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오래된 연장에 지배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본능에 충실한 삶이었다면 그중의 일부라도 새로운 연장으로 갈아 끼우는 노력을 하다 보면 우리는 훨씬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 전체의 진화 속도는 더디어도 개인의 진화는 노력하기에 따라 그 속도를 빨리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주변에서 찾아본 사례
아파트 가격에서 '조망권'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한강 조망권' 을 보유한 아파트는 서울에서도 매우 비쌉니다. 오래된 연장통을 보면서 문득 '한강뷰 아파트'와 '꼭대기층 펜트하우스'가 떠올랐습니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인간은 집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곳에 살았을 것입니다. 나무 그늘에서 자외선과 비를 피하고 밤이면 야행성 맹수의 공격을 대비해 나무 위에서 잠을 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불을 이용하게 된 후에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초원은 먹을 것을 구하기 편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지대가 평평하기에 위협을 감지하려면 높은 나무에 올라 망을 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높은 곳에서 주변에 모든 것이 내 시야에 들어올 때 안정감을 느낍니다. 전망대에 올랐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봅니다. 모든 위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안정감 때문에 높은 층일수록 더 가치가 올라가는 부동산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덟 번째 연장에 소개된 '고기를 향한 마음'은 임신 기간 내내 실제로 겪었던 일이기에 특히 더 기억에 남는 부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 중에서 가장 대접받는 것이 '고기'입니다. 반대로 여러 문화에서 못 먹게 하는 음식도 '고기'입니다. 힌두교는 소고기를 금지하고, 유대교는 돼지고기와 조개를 못 먹게 합니다. 나바호 인디언을 물고기를 금지합니다. 반면에 채소나 과일을 금지하는 사회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동물이 죽으면 면역계의 활동도 멈추어 생고기를 잠깐만 실온에 두어도 바이러스와 세균, 곰팡이가 침입하여 상하고 맙니다. 이렇게 상한 음식에는 살모넬라균, 탄저균, 대장균이 들어 있어 자칫 식중독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한 외관에 눈살을 찌푸푸리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반면에 채소와 씨앗은 죽은 후에도 식물 세포의 세포벽이 세균의 침입을 막아내어 잘 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채소 코너는 수확한 채로 흙을 털어낸 뒤 진열하고 고기는 진공 포장을 하거나 얼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에너지 함량이 높은 고기를 동경하면서도 주의하게 되었습니다. 면역계가 가장 민감할 때 고기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기도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기간이 임신 시기입니다. 첫 입덧은 맥도날드에서 패티 냄새를 맡았을 때입니다. 특히 소고기 냄새에 민감했는데 임신 기간 내내 소고기를 먹으면 전혀 소화를 시키지 못한 채 바로 토해 내어 아주 힘들었습니다. 돼지고기는 김치찌개에 넣어 먹으면 먹을 수 있었는데 소고기는 전혀 먹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입덧은 산모와 태아에게 위험한 음식이 애당초 입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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