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줄거리
고전하면 어렵다는 이미지가 강하고 실제로 읽어봐도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 작품은 재미있습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연극보다 글로 읽는 게 더 재미있을 때도 많았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톨스토이 단편 3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러시아 고전이 영미권 고전보다 더 까다롭게 다가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익숙지 않은 언어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공 이름만 해도 이반 일리치까지 꼭 기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많으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고문인데 길이가 짧기 때문에 외워야 할 이름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간단하게 내용을 설명하면 러시아 제정시대에 자기 생각대로 살기 보다는 남들이 봤을 때 괜찮아 보이는 수준의 선택을 해오며 살던 이반 일리치가 어느 날 갑자기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로 승진을 하는 것을 보고 잔뜩 화가 나 새로운 인맥을 뚫어 특진을 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커리어 정점에서 안타깝게도 갑작스럽게 병이 들어 죽기 직전 삶을 되돌아본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용만 보면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주인공을 둘러싼 등장인물이 매우 생생하고 흥미롭습니다. 지금 우리 모습과 똑같습니다.
등장인물
등장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직장동료들이 나오는데 그가 죽으면 누가 그 자리에 들어갈까 눈치를 봅니다. 혹시 다음은 내가 아닐까 은근히 기대하기도 합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도 빨리 카드 게임을 하고 싶어 합니다. 부인은 이반 일리치 생전에는 의사가 알려준 대로 하지 않는다며 짜증을 냅니다. 남편의 죽음 이후 어떻게든 직장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합니다. 한창 연애 중으로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은 아빠를 걱정하기보다는 연애에 집중하는 중입니다. 반면 학생인 아들은 유일하게 이반 일리치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농부이자 이반 일리치를 병간호하는 게라심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유일하게 호감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직장동료의 모습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정글 같은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자리를 두고 물밑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옆에서 흥미롭게 바라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내가 그 경쟁에 뛰어들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말했듯 '옛날에는 좋았겠지'라는 생각은 굉장히 건방진 생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는 것은 고달프고 힘들며 경쟁은 치열합니다. 가족은 오롯이 이반 일리치의 시선으로만 표현됩니다. 아내는 잔소리가 심하고 남편을 살짝 귀찮아하는 전 세계 부인들의 공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사가 술을 끊으라는데 말을 안 듣고 저렇게 마신다' 며 푸념하는 여느 할머니를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도 절대 부인 말 안 듣는 전 세계 남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반 일리치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인물은 농부 게라심입니다. 게라심은 항상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칩니다. 농부인 게라심은 항상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게라심은 이반 일리치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 주고 항상 밝게 대답하면서 주인공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느낀점 : 긴 병에 효자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읽는 내내 이 속담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물론 톨스토이가 그리고자 한 것은 죽음 직전 깨닫게 되는 '내가 주도하는 삶' 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와닿은 것은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나타나는 주변 인물들의 입장 차이였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해관계가 있고 자기 생활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병자에게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게라심 같은 직업 요양사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이 가족을 간호할 때는 심리적인 선을 넘기가 쉽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족이 직접 병간호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데 모두 힘들어했습니다. 사랑하니까 환자를 다 이해해야 한다는 마음, 이반 일리치처럼 자신의 삶 중에서 후회되는 감정을 옆에 있는 가족에게 쏟아내는 모습을 견뎌내야 하는 것 등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극복하기엔 다소 어려운 지난한 일상이 숨어 있는 듯했습니다.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면 이반 일리치처럼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서운함, 짜증,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 듯합니다. 소설에서는 어찌 됐든 내가 주도한 삶은 보다 더 만족스러운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사는 삶은 후회가 많을 확률이 더 높긴 하겠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원래 타고난 소질을 알아서 보여주는 아이는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아이들은 부모가 제공해 주는 환경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찾고 부모의 지원에 따라 성장합니다. 우리는 현실에 맞닥뜨리며 치열한 고민 끝에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이 '내'가 우선이 될 때도 '가족'이 먼저가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을 위하여 선택하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에게 최선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톨스토이처럼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딜레마를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평범한 사람 중에는 주변의 지원과 본인의 의지가 합쳐져 특출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도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공감이 많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고전은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확실히 좋습니다.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마다 읽는 느낌이 달라지고 좋아하는 인물이 틀려집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주변인물과의 시각차'에 더 눈길이 갔던 이유는 아마 한창 아이를 키우고 경제활동을 하는 40대 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더 나이가 들어 이반 일리치처럼 인생을 한번 정리할 시기가 되면 또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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