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참 애매하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논평가(?), 평론가(?) 정도가 될까?
네이버 지식 백과에는 아래와 같이 나온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80996&cid=42192&categoryId=58271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뉴스 전문가' 라고.. 그런데 이것도 임의로 정의하고 논의를 시작한다~로 시작하는 걸 봐서 업무 영역이 애매한 직업인 것 같다.
주인공 캐리를 비롯한 친구들 3명은 모두 뉴욕의 전문직 여성이었다. 고로 저널리스트는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고소득자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글은 잡지에 기고하고 높은 원고료를 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저널리스트를 메인잡으로 인정받는 경우를 본 적이 없으니 사실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가상의 직업같은 느낌이었다. 국내에서는 대학교수가 신문사에 기고를 하거나 기자가 사설을 쓰거나 신문사 데스크에서 논평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다 요새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연달아 읽고 있는데 드디어 저널리스트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왜 이들이 전문직으로 인정받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국내에는 블링크와 아웃라이어로 이미 유명한 말콤글래드웰은 2000년대 초반 경영 경제 부분의 베스트셀러를 장식하던 작가이다. 블링크와 아웃라이어는 한 가지 주제로 그가 깊이 있기 파고 든 글이기 때문에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지 않으면 심리학자가 쓴 글이라고 오인할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널리스트 면모를 보려면 모음집인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What the Dog saw)'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아, 이게 바로 저널리스트의 글이구나를 느낄 수 있다.
그는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글의 소재를 찾아간다. 여러 자료를 참고하고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실제로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실험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의 결과물을 문장으로 표현한다.
그의 문장은 번역으로 가공되었음에도 굉장히 맛깔나고 논리정연하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근거를 설명하고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는 그 동안 발표한 글을 다시한번 편집하여 묶어낸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주종목인 '인간 심리'에 대한 주제로 펼쳐진다.
그는 심리학자가 아니지만 심리학자들이 집필하는 책에서 그의 글을 인용할 정도로 신빙성이 높으며 객관적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연달아 읽다 보면 종전의 주장을 번복하기도 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학급의 학생수'를 줄이는 부분에 대한 결과는 주장이 틀려지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학생의 역량에 영향을 미치는 건 '학급의 수'가 아니라 '선생님의 질'이었다. 환경이 척박한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명문학교의 나쁜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보다 결과가 좋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선생님의 철밥통은 깨질 테고 교육노조는 들고 일어날테니 현실적으로는 난관이 꽤 많은 결론이다.
그의 글에서 내리는 결론은 솔직하다. 논술 시험을 대비한다며 중고등학교 시절 꾸역 꾸역 읽었던 신문 사설은 이미 알고 있던 결론 A와 B중 하나였다. 뭐 대충 아는 결론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식이었는데 말콤 글래드웰은 그러한 선택지를 모두 지운 상태에서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는 끊임없이 자문하고 참고하고 전문가에게 물어가며 결론을 낸다. 그리고 그 결론은 본인의 생각임에도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그가 주장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겠군' 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게 굉장히 신선한다.
소재도 다양하고 독특하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3부 인격, 성격, 그리고 지성 중에서 대기만성형 예술가들(조숙성은 천재성의 필수 조건인가) 부분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자녀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도움이 되었다. 재능이란 게 어떤 아이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경우도 있고 어떤 아이는 긴 시간을 두고 점차 나타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선택과 집중의 순간이 오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부모가 어떻게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틀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대기만성형 예술가들에서는 세잔과 피카소의 예가 나온다. 피카소는 젊었을 때부터 천재였고 세잔은 50대 이후에 빛을 발한 대기만성형 작가였다. 피카소는 20대 시절의 작품이 더 비싸고 세잔은 50대 이후의 작품이 더 비싸게 팔린다.
그런데 뒤늦게 성공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세잔에게는 그림을 가르쳐준 동료가 있었고 평생 직업을 갖지 않은 아들을 두었음에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40만 프랑이라는 유산까지 남겨준 은행가 아버지가 있었다. 재정적 지원이나 기술적 지원을 받지 못한 수많은 대기만성형 예술가가 얼마나 많이 스러졌을까 하는 부분에서 부모로써 느끼는 점이 많았다.
아이의 꿈은 내가 죽고난 후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묵묵하게 지원하고 믿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몫이라는 걸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느꼈다. 장항준감독과 김은희작가도 떠올랐다. 장항준감독을 타박하는 부모님 앞에서 그를 믿어달라며 시부모를 설득한 김은희작가. 그리고 작가가 되기 전에 이것 저것 관심을 보이며 조금 하다 말고 조금하다 마는 김은희작가를 기꺼이 지원해준 장항준감독. 그렇게 그들 부부는 서로를 지원하는 협력자로 생활하며 지금의 성공에 이르렀다.
인생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1980년대 초반생까지만 해도 20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30대에 결혼하고 안정찾아 50대에 애들 다 키우고 60대에 은퇴하는 삶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7080세대가 어른이 되었더니 세상은 어른으로써 자리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차 길어지고 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커지기만 한다.
그와중에 자신의 길을 찾지못한 채 중년이 되어버린 사람은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 뉴스를 들으면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 밥도 못먹고 살 것 같다. 그러한 중년에게 말콤글래드웰의 책을 권하고 싶다. 회사의 사무직으로 일하다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면서 경단녀가 되어버린 여성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결말'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똑같은 현상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각이 존재하며 그것에 대해 파고들다 보면 내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말하는 것이 이와는 전혀 상관 없는 주제임에도 자꾸 그런 희망이 생긴다. 어찌보면 말콤 글래드웰이 글을 쓰기 위해 행했던 노력을 나는 그동안 살면서 한번이라도 해본적이 있는가 하는 반성인지도 모른다. 그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자료를 모으면서 꾸준하게 노력한 적이 나는 있던가를 자문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1년~5년 정도는 가볍게 초창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 정도의 인내심과 뚝심도 갖추었다고 본다. 이것이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연달아 읽으며 얻은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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